ABOUT ME

Today
Yesterday
Total
  • 혈액은행
    카테고리 없음 2024. 5. 20. 11:27

    먼저 시범경기로 예전에 적었던 칼란트슈타이너박사를 잠깐 언급하면

     

    1901년부터 사람의 혈액군(血液群)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여 ABO식(式) 혈액형을 발견, 수혈법을 확립하였다. 또, 1940∼1941년에는 A.비너와 협동하여 Rh인자(因子)를 발견하였으며, 소아마비 초기에 유효한 혈청을 개발하고, 매독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1930년 혈액형에 관한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두 사람의 피가 우연히 섞인 후 응고가 된 현상에서 인류의 역사에 길이남을 위대한 발견을 한 칼 박사의 발견후에도

    당연하지만 피에 대한 연구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중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가져온게 바로 피가 공기에 노출되면 응고가 된다는 점이었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피딱지도 피가 공기에 노출되면서 응고가 되어 피로 만든 반창고의 역할을 하기도 하죠

    이는 '보존'이라는 중요한 조건에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계속되던 1900년대 피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은 커졌고 의사들도 끝없이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수혈은 혈액제제를 정맥으로 순환시키는 과정입니다.

    초기 수혈은 전혈을 사용했지만 현대의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적혈구, 백혈구, 혈장, 응고 인자, 혈소판 등 혈액의 성분만을 사용하기도 하는등 많은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

     

    1930년 3월 어느 날 밤, 모스크바 스킬호소프스키 병원 응급실에 손목을 칼로 베어 자살을 기도한 한 젊은 엔지니어가 실려 옵니다. 환자는 거의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이에  외과의사 유딘(Sergei Sergeevich Yudin: 1891~1954)은 심한 출혈로 사경을 헤매는 환자에게 죽은지 몇 시간 안 되는 사람의 몸에서 뽑은 피를 과감하게 수혈합니다.

     

    유딘은 옆방으로 뛰어갔다. 그곳엔 6시간 전에 버스에 치어 사망한 60세 노인의 사체가 있었습니다. 노인의 혈액형은 환자와 같았다. 유딘은 사체의 배를 절개하고 하대정맥에 주사기를 꽂아 가능한 많은 양의 혈액을 채취합니다. 서둘러 응급실로 돌아간 그는 이미 동공반사가 희미하고 맥박도 잡히지 않는 환자의 팔에 혈액을 주사했다. 250㎖를 주사하자 맥박이 희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150㎖를 더 주사하자 호흡이 규칙적으로 변하면서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나머지 수혈이 끝날 즈음에는 맥박이 확실히 만져졌고 얼굴색도 좋아졌다. 아무런 부작용도 없었다. 환자는 이틀 후 퇴원크리

     

    이 과정을 보면 당시로서는 기절할만한 일이었지만 이 놀라운 결정은  우크라이나의 수혈학자인 샤모프(Vladimir N. Shamov: 1882~1962)가 내놓은 특별한 연구에서 확신을 가져왔습니다. 샤모프는 사람이 숨을 거둔 후라도 일부 조직은 몇 시간 정도는 살아있는데, 피는 10시간 정도 살아있으므로 적절히 재활용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유딘은 샤모프를 믿고 죽어가는 이에게 죽은 이의 피를 수혈했고, 샤모프의 연구가 옳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는 혈액형의 발견과 더불어서  피에 대한 연구에 몇획을 그은 증명이었습니다.

     

    유딘역시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있기에  병원 내에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시신이 있는 경우에만 수혈을 합니다.

    다량 출혈로 사경을 헤매는 환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유딘의 병원에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시신이 있어야 하겠지만 인간사가 뜻대로 되는건 없죠. 

     

    유딘은 좀 더 과감해 집니다.

    숨을 거둔 이의 몸속에서 몇 시간 동안 머물었던 피가 쓸모가 있다 면, 아예 미리 뽑아내 몇 시간 저장해둔 피라고 해서 못 쓸 이유가 있을까? 이제 유딘은  건강하게 살다가 먼길을 떠난  시신을 보면 일단 피부터 뽑아 저장합니다. 드라큐라는 마셨는데 이 양반은 저장했네요. 당연히 유딘은 후속조치도 합니다.  피를 뽑은 환자의 건강력을 체크했죠.

     


    저장할 피에는 구연산나트륨을 주입하여 응고를 막았습니다. 이렇게 저장하다 보 니 몇 주가 지난 후에도 수혈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합다. 이에 삘받은  유딘은 시신뿐만 아니라 출산으로 얻게 되는 핏덩이인 태반의 피도 버리지 않고 뽑아서 저장합니다(제대혈을 처음 사용한 이가 유딘일지 모른다).

     

    이렇게 유딘은 '피는 환자가 필요할 때에 급혈자를 찾아서 채혈 후에 수혈하는 것이 아니라 저장해 두었다가 나중에 사용해도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해서 이용한 의사였습니다. 체혈과 수혈 사이의 시간장벽을 넘 은 의사인거죠.

    유딘은 1930년부터 1938년까지 무려 2,500명의 환자에게 시신의 피를 수혈합니다. 수혈자 중 7명만이 목숨을 잃었을 정 도로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업적은 드라큐라가 연상되었는지 소련을 제외한 서방국가들은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

     

    서방의 무관심에도 아랑곳 않고 소련의 혈액은행은 발전합니다.

     

    1930년대 중반까지 전국에 65개 이상의 대규모 혈액센터와 거기에 부속된 500곳 이상의 보조 센터들이 생깁니다. 병원 내에도 채혈과 수혈을 위한 시스템이 만들어집니다. 저장된 피는 '캔'에 담겨 필요한 곳으로 이동합니다.

     

    1930년대 소련은 최초의 수혈 선진국이 됩니다. 미국에서는 소련의 모델을 본받아 1937년에 팬터스(Bernard Fantus: 1874~1940)가 시카고의 쿡 카운티(Cook County)에 수혈 서비스 기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혈액 보존 연구소(Blood Preservation Laboratory)"라고 불렀다가 나중에 간편하고도 기억에 잘 남는 이름인 '혈액은행(Cook County Hospital Blood Bank)'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 전 해인 1936년에 스페인 내전(1936~1939)이 터졌다. 그 해에 스페인 의사 듀 란-호르다(Frederic Durán-Jordà: 1905~1957)는 바르셀로나에 대규모 혈액은행을 세웠습니다. 듀란 호르다는 유딘과 달리 '살아있는 사람'의 O형 혈액(혈액형에 관계없이 수혈할 수 있기 때문)만 300~400밀리리터를 채혈해 10% 구연산나트륨(혈액응고 방지제)를 첨가해 멸균, 밀봉, 냉장 저장합니다. 그는 30개월 동안 3만 명의 공혈자들 로부터 9,000 리터의 피를 공급받아 전선으로 보냈다. 전장에 피를 담은 수혈병이 등장한 것은 스페인 내전이 처음이었다.

     

     

    프랑코의 파시즘에 맞서 열심히 싸웠지만 전세는 공화군에게 불리했다. 1939년 2월 팬터스 에 바르셀로나 외곽까지 파시스트의 군대가 진격해오자 영국 적십자는 듀란-호르 다의 탈출을 도왔고, 영국에서는 스페인의 공화파를 지원하던 영국 의사들이 그의 런던 정착을 도와주었습니다. 

     

    런던에서 듀란 호르다는 전시(戰時) 수혈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던 본(Janet Vaughan: 1899~1993)을 만났고 그녀에게 그가 익힌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합니다.

     

    전쟁은 무섭고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갑니다.

    그리고 부상등의 치료를 위해 피는 늘 필요했고 이는 저장과 채혈의 중요성을 더 크게 합니다.


    본은 소련이나 바르셀로나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리 채혈을 해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급한 대로 채혈된 피는 소독 된 우유병에 냉장 저장할 수 있었고, 필요한 곳으로 보낼 때는 아이스크림 배달 트럭을 이용합니다. 본은 이러한 시스템을 미리 구축하자고 관련 기관에 제안했지만 번번히 거절만 당했다. '산 사람 몸속에 있는 피가 제일 좋 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본은 의학연구협회(MRC)로부터 짤막한 내용의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님 !!  망설이지 말고 고고씽"

     

    채혈을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날이 1939년 9월 1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틀후

     

    영국은 독일에 한판 붙자고 선전포고를 합니다.

     

    5천만명의 목숨이 사라진 비극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의학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Designed by Tistory.